아름다운 얼굴 (109) 임원경제연구소 정명현 소장 “번역은 문명의 옮김” 임원경제지 번역에 19년을 헌신한 학자
수정 : 2021-07-22 04:14:26
아름다운 얼굴 (109)
임원경제연구소 정명현 소장
“번역은 문명의 옮김” 임원경제지 번역에 19년을 헌신한 학자
2003년부터 번역 시작, 19년간 한 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그가 하는 일이 남에게, 또 사회와 나라에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뜻 세움이 참으로 곧고 힘차 어떠한 어려움에도 무너짐 없이 차근차근 뜻을 펼쳐나가는 이가 있다면 절로 존경심이 일게 된다.
34세에 뜻을 세우고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20년간 오로지 한 인물과 책에 집중했다. 그 소중한 유산을 우리와 나누기 위해 끈기있게 임원경제연구소를 지키고 온 정명현(53)소장은 파주가 자랑하고 존경해도 남음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평생 집중하며 살아온 인물은 조선의 대학자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다. 정확히 말해 그가 온 힘을 다한 시간과 노력은 풍석이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번역을 위해 바쳐졌다. 풍석 서유구 선생이 40년에 걸쳐 저술한 조선 최고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 당시의 소중한 생활 정보와 실용 지혜가 담겨있는 이 책은 농업, 상업, 의학부터 건축, 요리, 예술 심지어 고기 잡는 법까지 사대부들의 살림살이를 총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총 28,000여가지의 문물을 조목조목 설명한 실용서이다.
총 113권 54책 252만여 자로 구성된 한문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던 일이다. 임원경제지를 논문에 인용하거나, 부분을 번역해서 알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완역을 꿈꾸기에는 임원경제지가 다룬 분야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 일을 정명현 소장과 임원경제연구소의 학자들이 해내고 있다.
▲ 송오현 원장의 조건없는 지원으로 임원경제지 번역에 도전할 수 있었다
독지가의 3억 쾌척으로 시작된 번역. 무한책임으로 보답한다
정명현씨는 자신이 영어강사로 일했던 학원 원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DYB최선어학원 송오현 원장이 답을 했다. 아무 말 없이 매달 연구비를 지원해주었다.
“3년 내에 번역을 마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6년이 더 흘렀다. 그동안 송원장은 아무 요구 없이 지금까지 20억 가까이 후원해 주었고 지금도 매달 1천만 원씩 지원해 주고 있다”라며 담담히 말하는 정 소장은 “아무런 요구 없이 나를 믿고 지원해 주는데 어찌 무한책임을 지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석사 과정,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기꺼이 번역을 맡아, 매주 각자 분량을 온라인으로 올리고, 교열하면서 [임원경제지]번역에 힘을 모아준 연구자들은 20년 동안 정 소장과 80여 명이 넘는다. 이렇게 같이 땀 흘려 번역한 책은 총 67권 중 28권. 42% 정도다. 그렇게 치열하게 번역하고 혼신을 다했어도 아직 반이 더 남았다. 역으로 보면 풍석의 학문의 깊이와 너비가 얼마나 큰 지, 또 풍석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를 확인케 한다.
▲ 풍석 서유구 선생
무한책임이란 번역오류에 의심을 두는 것
그에게 있어서 무한책임은 바른 번역을 위해 의심을 거두지 않는 일이다. 번역에 오류가 가지 않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은 물론, 번역가들끼리 교차검증을, 또 기존 번역이 올바르다고 생각한 문장도 다시금 의심을 품고 되짚어보는 일 등이다. 이러니 번역이 더딜 수밖에. 하지만 잘못된 번역은 차라리 번역을 안 하는 것보다 못한 법.
“어느 원서를 표준서(저본)로 삼을 것인가부터 결정해야 한다. 또 필사본이기 때문에 다른 책을 뒤져보며 오·탈자를 확인한다. 여러 원서를 면밀하게 대조하여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교감(校勘)이 정말 중요하다. 출전 인용문을 따라 본문에서 의미를 대조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가 전달하려는 텍스트를 확정하는 정본화(定本化)를 완료하면 문장을 잘 자르는 것은 기본이고, 한국어로 옮길 때 쉼표, 마침표 같은 문장부호를 잘 넣어야 한다.” 어지러울 정도로 공력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게 되는 번역과정 설명이다.
▲ 출간된 서적중 일부
박사과정 중에 임원경제지에 반해 번역 도전 결심
그는 고려대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했지만 3학년 때 도올 김용옥의 강연을 들은 후, 도올서원 1기생으로 한문 고전을 접하면서 ‘역사와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개안’을 경험한다.
정 소장은 “번역은 단순한 문자의 옮김이 아니라 문명의 옮김이다”란 도올의 말에 깊이 공감, 서울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면서 임원경제지의 방대한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된 책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 번역에 도전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임원경제지 번역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진행됐다. 동 사업회는 석·박사로 구성된 소장학자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미친 듯 번역에 매달려 초역 95%를 달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2008년엔 임원경제연구소란 이름으로 비영리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고전번역원이 추진한 특수고전 번역협동사업에 선정되었다. 교육부로부터 20억에 가까운 예산을 지원받는 등 연구소의 염원이 나라의 감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또 2015년에 설립된 풍석문화재단으로부터 번역비 지원을 2016년부터 받기 시작해 번역에 속도가 붙은 상태다.
▲ 오랜기간 같이 번역작업을 해온 최시남 번역팀장(오른쪽)과 정명현 소장(왼쪽). 뒤쪽으로 함께 해왔던 연구자들의 사진이 보인다.
팜스프링에 있는 임원경제연구소
임원경제연구소는 파주시 금촌 팜스프링 아파트에 있다. 아파트에 연구소를 차리고 매일 7명의 상근 번역자들이 출근해 자신에게 할당된 문장을 번역한다. 방 3개와 거실의 큰 테이블에서도 번역 작업은 계속된다. 매일 오후 3시 반에는 다 같이 모여 티 타임을 가지며 번역 작업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을 나눈다. 벽에 징이 하나 있는데 먹을 걸 가져왔거나 오늘 식사를 내가 쏜다면 징을 울리는 재미난 문화도 있다. 번역일에 지치면 아파트 뒷동산에 뛰어 올라가 풍석이 가르쳐준 양생법으로 몸을 푼다. 정 소장은 풍석의 저서 중에서 곡식농사 백과사전인 본리지에서 배운 농법을 아들과 함께 직접 실천해보며 번역을 하기도 했다.
▲ 2020년 제 1회 임원경제지 학술대회
작년부터 임원경제지 시민학교와 학술대회 열려
임원경제연구소는 작년부터 임원경제지 시민학교를 열어, 풍석 선생의 뜻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임원경제지 학술대회도 열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7월 14일 온라인중계로 ‘예규지를 논하다’란 주제로 열렸다.
풍석선생의 뜻은 다른 지역에서도 기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충북 괴산에서 풍석 선생의 뜻을 살리는 임원경제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동원)이 6월 12일 임원경제해암캠퍼스(교장 윤석위)가 개교식을 열어, ‘임원경제지’를 토대로 한 ‘본리지 학교’를 본격 운영할 계획을 밝혔다. 이제 풍석 선생의 뜻이 전국으로 퍼져가고 있는 셈이다.
▲ 출간된 [보양지]와 수진(몸의 수련)편의 내용
▲ 임원경제지 규장각본 전체
2023 완역 2024 출간 목표, 아름다움은 연결된다
임원경제연구소는 임원경제지를 ‘2023년까지 완역, 2024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추구했다면 풍석 선생은 서민들의 실생활에 보탬이 될 이용후생(利用厚生)을 극한까지 탐구하여 사대부들을 계몽시키고 그들이 서민들의 삶을 파격적으로 개선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라고 정명현 소장은 말한다.
임원경제지에 빠져 번역 작업을 하면서, 정명현 소장은 파주로 이사왔다. 아들과 함께 임원경제지 본리지의 가르침 대로 농사를 짓기도 했다. 풍석선생을 따라 파주사람이 된 정명현 소장의 인생은 그 자체가 ‘임원경제지’가 된 것 아닐까 싶다.
그는 오늘도 에어콘이 없는 방에서 번역에 몰두하다, 직접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을 것이다. 이렇게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면 안하겠다’ 각오와 성실함, 끈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 같다. 힘내라고 보내온 보약과 보양음식들이 식탁위에서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임원경제연구소 031-946-6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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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종 기자
#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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